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를 나타내곤 한다. 특히 1982년과 1995년에 외환위기를 당했던 멕시코 경제의 성적표는 이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경제위기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외환위기를 당했는데, 정책대응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1982년의 외환위기는 소위 ‘원조’ ‘잃어버린 10년’을 야기했지만, 1995년의 외환위기는 불과 1년여에 만에 극복함으로써 정책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했다. 이 문제는 현재의 우리나라 경제위기를 위해서도 좋은 교훈이다.
멕시코는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하여 경제발전을 이루는 등 우리나라와 유사한 경제발전의 역사를 거쳤다. 1930년대 초에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여 산업화의 기초를 닦았고, 세계대전 후에는 본격적인 공업화 단계로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연평균 성장률이 1931년부터 1971년까지 무려 40년 동안에 5.7%라는 비교적 높은 실적을 기록하였고, 물가상승률은 5% 미만을 유지하여 ‘멕시코의 기적’을 연출했다. 이에 따라 멕시코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5년에 세계 47위를 기록함으로써 선진국 문턱에 거의 도달했다. 참고로 당시에 대만은 61위였고 우리나라는 76위였으며, 일본은 23위였다(‘IMF의 구제금융사례 연구’ 7쪽, 김원호 외 5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97년). 한 마디로 우리나라 경제보다 4반세기나 앞서나갔던 것이다.
그런 멕시코가 어쩌다가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을까? 그것은 1982년에 발발한 외환위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직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1989년까지 비교적 장기간 경기부진의 늪에 빠졌으며, 이후 경기가 회복된 뒤에도 간헐적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함으로써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곤 했다. 다만, 1995년의 외환위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해냄으로써 불과 1년 만에 경기 회복을 이루기도 했다. 그 뒤 2000년과 2001년에는 국제수지 적자가 급증하면서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자, 성장률이 0%대로 뚝 떨어지는 등 3년 연속 경기부진의 늪에서 헤매야 했다. 외환위기는 경제의 성장에 있어서 어느 무엇보다 치명적인 셈이다. 따라서 외환위기는 원천봉쇄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외환위기가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부터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외환위기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아주 쉽다. 외환위기가 발발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이 차례대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경기과열 → 수입 급증 → 국제수지 악화 → 외환보유고 감소 → 외채 도입 급증 → 환율 급등 → 외채 환차손 발생 → 외채 유입 중단 및 외화 유출 → 외환보유고 고갈 → IMF 구제금융 요청 등의 과정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경기과열이 외환위기의 근본 원인인 셈이다. 여담이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는1998년에 극심한 환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위와 같은 자명한 원인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외환위기가 반복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원인을 모르면 예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1982년의 멕시코 외환위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76년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 뒤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이 급증하면서 경제가 공전의 호황을 구가했다. 산유량이 1978년 약 4만 배럴에서 1981년 7천2백만 배럴로 급증하였으니(위의 책 12쪽),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성장률은 1978년부터 1981년 사이에 무려 8~9%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경기 과열이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미 1978년에 20%를 위협했고, 1980년부터는 20%를 훌쩍 넘었으며, 1981년에는 27.9%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이처럼 물가상승률이 높아지자 멕시코 국제경쟁력은 크게 떨어졌고, 국제수지(경상수지)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여 1981년에는 GDP의 6.5%에 달했다.
1977~1982년 멕시코의 주요 경제지표(단위 : %)
구분 | 1977 | 1978 | 1979 | 1980 | 1981 | 1982 | 1983 |
성장률 | 3.4 | 8.3 | 9.2 | 8.3 | 7.9 | -0.6 | -4.2 |
물가상승률 | 29.1 | 17.5 | 18.2 | 26.3 | 27.9 | 75.0 | 92.9 |
경상수지/GDP | -2.0 | -2.3 | -3.1 | -5.4 | -6.5 | -3.4 | 3.9 |
자료 : 멕시코의 금융개혁 추진현황과 교훈, 장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위와 같이 경기과열이 4년이나 지속되고, 국제수지 적자도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82년 이전에는 외환위기가 발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풍부한 석유매장량과 급증한 산유량 그리고 석유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에 대해 국제자본이 굳건히 믿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외채를 얼마든지 들여올 수 있었다. 실제로 1978년 340억 달러였던 외채는 1981년에 753억 달러로 불과 3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렇지만 1982년부터 석유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1981년 배럴 당 33.0달러까지 치솟았던 석유가격이 1982년에는 28.1달러로 떨어졌고, 이후 줄기차게 떨어져 1986년에는 11.8 달러를 기록했다(이상의 통계자료 : ‘IMF의 구제금융사례 연구’ 12~14쪽, 김원호 외 5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97년).
경제위기감을 느낀 당시의 뽀르띠요 정권은 1981년 6월에 정부예산 삭감, 수입허가제 강화, 페소화 환율방어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정부예산을 4% 삭감한다고 발표했으나, 오히려 18%나 증가시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것이 경기과열을 더 부추겼고, 국제수지의 대규모 적자를 지속시켰다. 여기에다 외채의 도입마저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1980년까지 미국 센트 당 2페소였던 환율이 1981년에는 3페소로, 1982년에는 10페소로 상승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국 자본과 외채의 환차손이 발생하였고, 환차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외채를 갚거나 투자를 회수하면서 외환보유고가 점점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외환보유고가 고갈에 이르자, 멕시코 정부는 IMF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IMF 협상단은 1982년 1월과 5월과 6월 등 세 차례나 멕시코를 방문했지만, 12월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멕시코 정부는 혹독한 긴축프로그램에 반대했고, 이에 따라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외환보유고는 나날이 줄어들기만 했다. 결국 8월 7일에는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마저 너무 늦어서 외환보유고가 완전히 바닥남으로써 8월 20일에는 지불유예(Moratorium)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1985년 8월까지 채무재조정(Rescheduling) 협상이 3년 이상 지속됐고, 그 동안 멕시코 경제난은 점점 더 심각해져갔다. 한 마디로, 멕시코 정부의 터무니없는 버티기가 파국적 상황을 불러왔던 것이다.
1982년 12월, 새롭게 출범한 델라마드리드 정권은 IMF와의 협상을 신속하게 타결 지었지만, 이때에는 외환보유고 고갈과 그에 따른 환율 폭등이 불러온 피해가 너무 크게 누적되어 있었다. 그래서 경기 침체가 가속화했으며 물가마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결과를 빚었다. 실제로 성장률은 1982년과 1983년에 각각 -0.6%와 -4.2%를 기록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75.0%와 92.9%를 기록했다.
더욱이 1985년에는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멕시코 정부가 IMF와의 협상을 어기고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자, IMF는 대기성차관(구제금융)의 제공을 중단했다. 잠시 동안 IMF 구제금융에 따라 외환보유고가 확충되자 국내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였으나, 다시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경기는 빠르게 뒷걸음치고 말았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1986년 성장률은 -1.3%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2년 동안 1% 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조금씩 안정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다시 치솟기 시작하여 1987년에는 130.8%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기록했다. 1984년 0.19페소였던 환율이 1985년 0.37페소, 1986년에는 0.92페소, 1987년에는 다시 2.21페소로 매년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것이 물가상승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1984~1989년 멕시코의 주요 경제지표(단위 : %)
구분 | 1984 |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성장률 | 3.3 | 2.6 | -1.3 | 1.8 | 1.2 | 3.3 |
물가상승률 | 66.7 | 57.8 | 87.3 | 130.8 | 114.3 | 20.1 |
환율(페소/센트) | 0.19 | 0.37 | 0.92 | 2.21 | 2.38 | 2.64 |
자료 : 멕시코의 금융개혁 추진현황과 교훈, 장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88년 새로 등장한 살리나스 정권은 외국인 투자 촉진법을 제정하여 국내 산업투자 및 금융시장을 대폭 개방했고,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시장경제 활성화를 촉진했으며, 1982년 1,155개에 달하던 공기업을 1994년 말에는 195개로 감소시키는 대대적인 민영화를 추진했다. 또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재정긴축을 실시했고, 환율도 적극적으로 안정시켰다. 이에 따라 성장률은 1989년부터 1994년 사이에 연평균 3.5%라는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994년에는 7.9%까지 떨어졌다.
1990~1995년 멕시코의 주요 경제지표(단위 : %)
구분 |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1995 |
성장률 | 4.4 | 3.6 | 2.1 | 2.0 | 4.5 | -6.2 |
물가상승률 | 26.6 | 22.7 | 15.5 | 8.0 | 7.1 | 52.0 |
환율(페소/센트) | 2.95 | 3.07 | 3.12 | 3.30 | 3.47 | 6.49 |
자료 : 멕시코의 금융개혁 추진현황과 교훈, 장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다만, 환율상승을 지나치게 장기간 강력하게 억제하는 바람에 국제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이것이 국제수지 악화를 불렀으며, 결국은 1995년에 또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때도 당연히 경기과열이 여기에 가세했다. 외채가 1989년 953억 달러에서 1994년 1,398억 달러로 증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재정을 외채에 의존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정을 팽창시켜 성장률을 1994년에 1993년보다 두 배 이상 높은 4.5%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94년 1월에는 NAFTA에 반대하는 농민반란이 일어났고, 3월에는 집권당 대통령 후보가 그리고 9월에는 사무총장이 암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정치적 불안이 심각해졌다. 그 바람에 자본의 해외 도피 및 유출이 심각하게 벌어졌다(‘IMF의 구제금융사례 연구’ 28~29쪽, 김원호 외 5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97년 참조).
그 뒤 새로 출범한 세디요 정권은 1994년 12월 22일 자유변동 환율제로 전환하고, 1995년 1월 3일에는 민영화, 재정긴축, 국제수지 개선, 물가 안정, 임금상승 억제 등을 내용으로 한 비상경제극복을 위한 공동협약을 노동자 사용자 정부 농민이 함께 체결하였다. 1월초에는 미국과 캐나다에 긴급자금을 요청했다. 이에 부응하여 1995년 2월 4일에는 G7회의가 멕시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528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IMF와의 구제금융 협상도 타결 지었다.
이런 신속한 대처로 멕시코 경제는 1995년 -6.2%의 극심한 경기후퇴를 딛고 일어서서 1996년부터는 5~6%의 높은 성장률을 2000년까지 지속했다. 물가상승률은 1995년 외환위기에 따른 환율 급상승으로 1996년에 34.4%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후 꾸준히 떨어져 2000년에는 다시 한 자리 수를 회복했다. 환율 역시 외환위기 영향으로 6.49페소로 폭등한 뒤 1998년에는 9페소대로 상승했으나 1998년부터는 다시 안정을 이루었다. 그 뒤 미국 나스닥시장의 붕괴와 9·11테러 사태에 따른 세계적인 불경기의 영향으로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최근의 세계적인 금융위기 직전까지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1996~2001년 멕시코의 주요 경제지표(단위 : %)
구분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성장률 | 5.2 | 6.8 | 5.0 | 3.8 | 6.6 | 0.0 |
물가상승률 | 34.4 | 20.6 | 15.9 | 16.6 | 9.5 | 6.3 |
환율(페소/센트) | 7.60 | 7.92 | 9.14 | 9.56 | 9.46 | 9.34 |
자료 : 국제통계연감 2007, 통계청
이상의 멕시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책적 대응이 얼마나 신속하고 얼마나 적절했느냐가 그 이후의 경제적 성과를 좌우한다. 그밖에도 멕시코와 비슷한 사례는 세계경제사에서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06부터 시작하여 1907년에 본격화한 미국의 금융위기는 1929년에 시작하여 1930년에 본격화한 금융위기와 많은 면에서 유사했다. 특히 금융기관의 도산 등이 불러온 금융시스템의 붕괴 위험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났다. 1907년의 경기하강은 1908년부터 경기상승으로 돌아섰고,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그렇지만 1930년의 경제공황은 세계 전역으로 전염되었고 그 기간도 세계대전 직전까지 10년 동안이나 지속했다.
둘째, 1987년의 주식시장 붕괴와 그 직후인 1980년대 말의 주택대부조합 도산사태 역시 1930년대 대공황을 불러왔던 금융위기에 못지않게 심각했다. 그 결과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0.8%와 -1.0%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심각한 경기부진을 겪었지만, 1992년부터는 경기호조가 이어져 과거에 불수 없었던 초장기 경제번영을 누렸다. 1930년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던 것이다.
셋째, 바로 앞에서 언급한 1980년대 말의 미국 금융위기는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던 일본 금융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도 미국처럼 1980년대 말에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심각한 경기하강에 직면했던 것이다. 이때의 정책적 대응이 부적절하여 일본 경제는 그 뒤 10년 넘게 초장기 경기부진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에 미국은 당시의 금융위기를 비교적 짧은 기간에 극복해냈다.
넷째,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불러온 현재의 금융위기는 1980년대 말의 미국 주택대부조합 사태와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 크게 다르다. 2007년부터 시작한 현재의 금융위기는 이제 세계 전역으로 전염되어 1930년대에 못지않게 심각한 경기침체를 불러왔고,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섯째, 1980년대 중남미의 외환위기는 십수 년에 걸쳐 진행하면서, 중남미 경제에 파멸적 결과를 남겼다. 경기부진이 지속되면서 국민소득이 오히려 뒷걸음쳤으며, 심각한 실업난과 함께 초인플레이션의 고통까지 국민들에게 안겨줬다. 그렇지만 1990년대 후반에 발생한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비교적 단기간에 극복했고, 그 폐해 역시 1980년대 중남미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적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반복하거니와,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의 정책적 대응이 얼마나 신속하냐, 그리고 얼마나 적절하냐에 따라 그 경제적 피해는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역사적 사례들은 현재의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사례들의 교훈을 되새겨, 점점 더 심각해지기만 하는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할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그런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것만 같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경제회복에 실패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경제정책의 노선은 어떻게 변할까? 아직 이런 논의를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대비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특히,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은 김영삼 정권의 경제정책과 거의 비슷하여 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1998년의 환란과 비슷한 파국적 위기가 닥치거나 일본과 같은 초장기 경기부진이 닥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당시의 환란과 같은 파국적 위기가 또 닥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당시의 외환위기 극복이 실패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당시와는 반대의 정책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에는 더욱 파괴적인 결과를 빚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위에서 언급한 멕시코 경제의 역사적 경험은 이 문제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